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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시상식을 다녀왔습니다. 스타가 된 선수나, 되기 전의 선수를 응원했던 기억은 많지만 두 요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유난스런 짓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이게 다 마이너스의 끝을 달리는 저 때문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다시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어린이 타령을 하며 지켜봤던 순간부터, 이제는 훌쩍 자라버려 언젠가 다른 유니폼을 입은 윤석민을 보게 될 날이 오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지금까지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습니다.(와중에 무조건 KIA에 남아서 우승을 시키고 해외진출하겠다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혼자 토라지기도 했습니다만…;;)


괜스레 감상에 젖어, 타이거즈 웹진을 뒤적거리면서 예전 기사들을 한 번 찾아보았는데요. 오래 전에 읽었던 기사들이 새삼스럽게 반갑기도 하고 간질거리기도 했습니다.



최연소 특급 마무리를 꿈꾸던 신인 시절의 윤석민

 






지금보다는 조금 앳된가요?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루키 시즌의 윤석민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140킬로대의 직구를 던지면서 마무리를 하다가 홈런을 맞고도 좋다고 웃고 있는 녀석. 그런데도-기대할 사람이 없어서-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다는 이유로 내년에는 제발. 하고 기대를 하게 만들었던 녀석. 워낙 땅굴을 파고 들어가던 KIA 전력이었기에 제법 파격적으로 다음해 연봉이 5000만원까지 올랐던 것까지.

2006년이었던가요. 우완 롱릴리프라는 보직을 받고 시즌을 시작했었는데, 괜히 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나름대로 기대주였는데 필승조도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지는 경기에서 길게 던지는 역할을 맡았거든요.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필승 계투가 되더니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나오더군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갑자기 구속이 빨라졌는데 산삼 백뿌리를 캐먹었다고 했었나. 어쨌나.(다시 생각해도 영물이에요. 그 산삼 아직도 구할 수 있거든 직접 캐다가 정성철 및 기타 등등의 잉여들에게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요.)



당시에는 이순철 위원이 아닌 모든 기자들에게 공손한 자세로 인터뷰를 했구나-싶어서 캡쳐했습니다..;





2006년 봄-초여름. 필승 계투에서 한참 잘 나갈 시절에 했던 인터뷰입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이 시절에 윤석민이 서울로 진학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가 김명제, 박병호가 워낙 잘했으니 어차피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이야 어떨 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컴퓨터 게임으로는 팀 내에서 독보적이었다고 하는데 특별히 까이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야구는 잘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07시즌의 윤석민은, 단 한 번도 타이거즈 웹진 인터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캠프 내내 불펜으로 시즌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런 김진우의 이탈로 선발 투수로 보직을 변경한 것 치고 충분히 잘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개막LG전과 문학SK경기. 두 번의 무실점 1자책 패배 경기를 기억하기에 7승 18패만을 가지고 평가하기엔 지금까지도 억울한데. ‘운이 없다’라는 말로 너무 많은 기억을 덮어버리고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기록만이 남았을 뿐, 팀 역시 변명의 자리를 만들어주기보다 내년을 기약했습니다.

뭔가 억울해서 블로그에서 뒤적거려서 찾아온 2007 시즌 중 윤석민 인터뷰 영상-아직 이방 수염은 기르기 전이네요..;



(출처: 스포츠 조선)




2008년의 시작-허리가 조금 굵어졌나요?;;;
 



팬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올해는 꼭 지난 시즌에 못 챙긴 승수까지 다 쓸어오자고 타올랐던 2008시즌을 맞이하던 기사입니다. 전반기 내내 손민한 선수를 뒤따르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윤석민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었는데요. 제 입으로는 하프 시즌 에이스가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면서도-서정환 감독 뒷담화는 덤이고요-게시판에서 그런 글들이 보이면 화르륵 타오르는 찌질함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2008시즌이 마무리된 후 기사입니다. 특이하게도 시즌 시작과 끝에만 인터뷰를 했었네요. 잘하긴 잘 했는데, 미묘하게 아쉬움이 남은 시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쉬움은 역시 체력이었고요.

 



2009년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올해 양현종-_-을 보고, 다시 당시의 윤석민을 생각해보면 08 올림픽 금메달-09 wbc 준우승 활약을 거치면서 얼마나 신나고 들떴을까. 헤아려보게 됩니다만 그래도 내내 성장하던 윤석민이었기에 아쉬움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4월 내내 부진하다가 팀 내 마무리 투수의 부재를 이유로 뒷문지기를 하기도 했었고, 다시 선발로 전환하는 등. 우승의 주역이라기보다 김상현이 만들어 준 우승의 초대 손님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010년의 윤석민은 또 한 번 웹진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윤석민에게 아쉬움이 아닌, 실망을 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자꾸만 보직을 변경시키는 감독님 때문에 내심 궁합이 맞지 않는 건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윤석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2011년 달랐습니다. 팬들이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것 같아서 안심하면서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늘 시상식에서 ‘야구와 인연이 아닌가 고민했었다’고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에이스’라는 단어의 무게를 지고 응원했던 수많은 선수들 중, 그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주었던-그리고 그걸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을 윤석민의 오늘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습니다.(우씨. 쓰고 나니까 오글거려서 토할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만은….)


덧1. 그, 그러니까 해외 진출 이야기 하지마. 아직은 맨정신으로 양현종한테 에이스가 되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하아)

덧2. 전설을 능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볼넷 양현종 선생의 오늘. 내년이면 가능하겠죠. 아마도 충분하겠죠.(기록/아이스탯)

 

 

 

 

 

 덧3. 본문 도입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 글에 인용된 자료들 중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전부 KIA 타이거즈 웹진에서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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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제